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우리 자신을 열심히 치장 하며 살아갑니다. 나를 더 멋있게 치장하기 위해서 좋은 옷, 돈, 명예를 쫓아다니며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렇게 세상의 것들로 치장하면 자신의 인생이 더 멋있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셨을 때, 인간에게는 자신을 치장할 옷이 필요 없었습니다. 처음 지음 받은 인간은 무언가 자신을 가리고 무엇으로 자신을 덮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아담은 지음 받은 순간부터 옷을 입지 않아도 춥지 않았고, 옷이 없어도 수치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지으실 때 아담에게 불어넣어 주신 하나님의 생기, 곧 하나님의 영은 아담 안에 거하시면서 보이는 외면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충만한 영으로 떳떳하게 살게 하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이 먹지 말라하신 선악과를 아내와 더불어 먹고 범죄하고 맙니다. 이렇게 타락한 인간은 자기 안에 죄악이 가득함에도 뻔뻔하게 고개를 드는 타락한 존재가 되어 이제 하나님에 대해서도 무감각해지고 죄에 대해서도 무감해지는 완전히 타락한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렇게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난 뒤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지어 입혔다는 내용입니다. 왜 하나님은 죄 지은 그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을까요? 아담과 하와가 나뭇잎으로 만든 옷이 보기 싫어서 질긴 가죽옷을 지으셨을까요?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이 대놓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배신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고 자신들의 잘못을 다 씻을 때까지 참회하며 살겠다고 다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들의 죄가 부끄러워 금방 시들고 떨어질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고 하나님을 피해 다니는 파렴치한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런 뻔뻔한 자들을 더욱 벌거벗겨서 자기 죄악을 바라보게 하고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자로 죽을 때까지 만드셔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 앞에 잘못했다고 회개하지도 않았고 하나님 앞에 자기 죄악의 수치를 씻고자 눈물로 엎드리지도 않았는데 왜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친히 옷을 지어 입히셨을까요?


그 인간들이 뭐 한 게 있다고 하나님은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기 위해 애꿎은 짐승을 죽이셔야 했을까요?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은 인간들을 죽이지 않고 범죄 한 인간들의 수치를 가리시려고 직접 짐승을 잡고 직접 가죽을 벗기고 직접 옷을 지어야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아담과 하와가 나뭇잎 옷을 입은 것은 벌거벗은 부끄러움 때문에 입은 것이지 자기 안에 있는 죄악의 부끄러움 때문에 입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나뭇잎으로 자기 몸을 가렸고 그 순간에는 벌거벗었다는 수치감이 사라졌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벌거벗었다는 외적인 부끄러움을 보았지 자기가 하나님 앞에 범죄 했다는 내면의 부끄러움은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죄를 지은 자들에게 하나님은 자신을 배신한 그 장소, 하나님을 버린 그 죄악의 현장에서, 짐승을 잡아 그 껍질을 벗겨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십니다. 그렇게 인간의 수치를 덮어 주기 위한 가죽 옷을 만들기 위해 하나님은 동물 한 마리를 죽이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동물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동물은 우리 인간의 죄악을 가리어 줄 수 있는 화목제물로 오실 예수그리스도를 예표 합니다.


요한1서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아들 예수를 어린양으로 죽이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이 땅에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정말 도저히 이해 할 수도 상상 할 수도 없는 인과율의 법칙이 깨지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또한 동물을 죽이고 가죽을 벗기었으니 피가 진동 하였을 것입니다. 

그 피는 바로 인간을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피였습니다. 인간의 죄에 대한 제사는 피 값이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내려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인간의 죄를 대신해 제물이 되어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전서1장18-19절 18.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죄악 된 우리를 살리시려 이 땅에 오셔서 완전한 속죄의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 한 것입니다.


인간들이 하나님을 떠나, 다 범죄하고 타락할 때 어린양의 가죽을 벗겨 아담과 하와의 부끄러움을 덮은 것 같이, 예수님이 이 땅에 어린양으로 오셔서 수치를 모르는 타락한 인간들을 위해 벌거벗겨져 대신 수치를 당하고 대신 죽어주심으로 인간들이 저지른 모든 죄악을 다 덮어주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작 나뭇잎으로 자기 몸을 가리고 하나님 앞에 떳떳하다고 고개를 드는 아담과 하와와 같은 죄 성이 우리 안에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렇게 없어질 나뭇잎 영성으로 어리석게 착각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자기 의로움으로 치장하는 나뭇잎 신앙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나를 포장하고 있는 모든 경건의 나뭇잎과 자기 의로움의 나뭇잎을 다 떨쳐버리고, 나를 위해 수치를 당하시고 자신의 의로움을 덧입혀 주신 예수님의 가죽옷을 입는 신앙입니다. 이러한 가죽옷을 입혀 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벌겨 벗겨지는 수치를 당하시며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죄인 된 우리에게 예수님의 구원의 옷 곧 예수님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여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이사야 61:10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예수님의 은혜는 아무리 더럽고 추하고 악한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구원의 옷을 우리에게 입혀 주시어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고 가장 깨끗한 자로 만들어 주시어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전능자 이십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구원의 옷은 죄 인된 자들에게 먼저 입혀주시는 어린양의 가죽옷입니다. 아무리 그 인생이 죄악의 옷을 껴입고 날마다 빼앗기는 삶을 산다 할지라도 예수님이 덧입혀 주시는 의의 가죽옷 예수의 옷을 입는 자는 잃어버린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회복하고 세상에서 담대하고 하나님 나라에서 당당하게 사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 권세를 누릴 수 있는 이유는 나뭇잎 같은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행위로 난 것이 아니고, 오직 자신을 죽여 우리를 살리신 예수님의 살과 피로 구원받는 인생임을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가죽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 가죽옷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남아 있어 아직 죽지 않고 우리의 숨이 붙어 있을 때 자신의 나뭇잎 옷을 다 벗고 예수님이 주시는 의와 생명과 진리의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이 사실을 안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 27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이 말씀은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 앞에 나온 자는 아무리 추악한 죄악의 더러운 옷을 잔뜩 껴입었어도 예수님이 주시는 의의 옷을 입기만 하면 그 즉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세례의 의미입니다. 


세례란 죄인이 예수님의 의의 옷을 덧입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바울은 그런 세례의 의미를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몰랐던 바리새인 시절에는 자기 경건의 옷과 학벌과 식을 의의 옷으로 착각하며 입고 다녔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 자기가 입었던 경건과 지식과 학벌과 명예의 모든 옷은 다 배설물처럼 버려야 하는 쓰레기 옷이라고 고백했던 사람이 사도바울입니다. 


성도라 하면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 무엇을 입고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에 오래 다녔다고 하는 연륜의 옷, 직분이 주는 자랑의 옷, 자신이 얼마나 성경을 많이 읽고 얼마나 오랜 시간 기도하는지, 종교행위가 주는 경건의 옷,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이 부끄럽다 하시는 바리새인의 나뭇잎 옷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입혀주시는 은혜의 옷 외에 우리가 입을 수 있는 옷은 없습니다. 성도는 날마다 거저주시는 예수로 옷 입는 자입니다. 


이제는 우리를 감싸고 있는 모든 나뭇잎 옷을 다 벗어버리고 예수님이 자기 생명을 버려 거저 주시는 은혜의 옷을 입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떳떳하고 무엇으로 부끄러워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예수를 모르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해야 하고, 내가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 심히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떳떳하게 당당하게 말해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주님이 대신 수치를 당하셨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예수님이 자신의 옷을 벗어 나에게 입혀 주셨다고 소리 높여 자랑해야 합니다. 


주님은 수치를 당하셨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당신을 옷을 입혀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를 우리가 입었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믿는 자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오직 예수님이 이 땅에서 수치를 당하시고 죽어주신 예수님의 은혜 때문이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해야 합니다. 나의 자랑의 옷, 거룩한 옷, 헌신의 옷, 썩어 없어질 세상의 옷으로 나를 꽁꽁 치장했었습니다. 내 안의 거짓된 신앙과 죄악으로 인하여 썩어지고 없어질 나뭇잎 옷을 부여잡고 살던 비련한 인생이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 가죽옷을 준비해주시는 하나님을 몰랐고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친히 수치를 당하시는 예수님의 은혜를 몰랐던 죄인이라고 회개해야 합니다. 썩어 없어지는 나뭇잎으로 우리를 치장하려한 우리의 죄악을 회개해야 합니다.


썩어 없어지는 나뭇잎으로 우리를 치장하기위하여 얼마나 많은 시간 세상의 것을 구하며 살아왔습니까? 이제는 돈, 명예, 자녀, 건강 등 온통 세상의 것들을 구하며 나의 영광을 위하여 철저히 예수님을 이용했던 우리의 죄악을 보여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오직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만을 구하는 인생 되게 해달라고 간구해야합니다. 세상의 썩어 없어질 나뭇잎을 구하는 인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 되시는 예수님의 은혜의 옷이 필요한 자가 되게 해달라고 주님만을 구해야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이 세상의 시들고 헛된 옷을 다 떨어버리고 오직 영원한 은혜의 옷 되시는 예수님의 의의 옷을 입고 살아가게 되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모든 수치를 가리워 주시고, 죄악 가운데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만을 바라보며 나아가 나무 잎의 영성이 아닌 가죽옷의 영성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고 살아가는 가장 위대한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시길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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